2019년 2월 16일 토요일

영화로보는역사 파놉티콘과 트루먼쇼

영화로보는역사 파놉티콘과 트루먼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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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
- 트루먼 쇼, 그 후의 이야기
Ⅰ.트루먼, 일상에서 감시의 시선을 느끼다
Ⅱ. 정보사회 정보감옥
1. 벤담의 파놉티콘
2. 공장 파놉티콘
3. 전자, 정보 파놉티콘
4. 역감시
Ⅲ. 트루먼 쇼, 그 후
Ⅰ. 트루먼, 일상에서 감시의 시선을 느끼다
영화 '트루먼 쇼'를 보고 돌아온 후, 한동안 나는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물론 그 불안감이 항상 내 뇌리에서 맴도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적인 행동을 하다가도 문득 흠칫 놀라며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게 되는 것이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혼자서 취하는 행동에도 조심스러움이 배어나오기 마련이었다. 트루먼이 그랬듯이,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행복했던 삶의 터전이 감시의 시선을 지각하게 된 후부터는 보이지 않는 철창으로 둘러싸인 감옥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Ⅱ. 정보사회 정보감옥
1. 벤담의 파놉티콘
벤담이 고안한 감옥 파놉티콘에 대해서는 예전에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야 그 개념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파놉티콘의 구조를 보면, 파놉티콘 바깥으로 원주를 따라서 죄수를 가두는 방이 있고 중앙에는 죄수를 감시하기 위한 원형 공간이 있다. 이 중 죄수의 방은 항상 밝게 유지되고 중앙의 감시공간은 항상 어둡게 유지되어, 중앙의 감시공간에 있는 간수는 죄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반면에 죄수는 간수를 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간수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지의 여부도 알 수 없다. 파놉티콘에 수용된 죄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 간수의 시선 때문에 규율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못하다가 점차 이 규율을 내면화해서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게 된다는 것이 벤담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시선의 비대칭성'이 파놉티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었다. 그 외에도 파놉티콘은 그 주인이 국가와 계약하여 운영하는 사설감옥이자 계약식 감옥이었다는 점과 죄수의 노동으로 유지되는 공장형 감옥이었다는 점이 파놉티콘의 주요한 특징이다.
언뜻 보기에는 공리주의 철학자였던 벤담이 이러한 감옥을 구상해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애써왔다는 사실이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공리주의의 목표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점에서 비추어 보았을 때, 벤담은 다수의 시민들의 최대 행복을 위하여 소수의 범죄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이들로부터 노동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타당한 길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파놉티콘의 주인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파놉티콘의 현실 적용을 주장하였던 것을 보면, 벤담은 다수의 시민들의 행복보다는 자신의 행복을 꾀하기 위해 파놉티콘을 이용하려고 했던 것 같아서 다소 실망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비록 현실에서 실현되지는 못하였지만, 벤담의 파놉티콘은 여러 학자들을 통하여 중요한 논쟁의 여지를 만들어 주었다. 푸코는 감옥을 위해 설계된 파놉티콘이 사회 전반적인 통제와 규율의 원리로 확산되었다는 주장을 하였다. 파놉티콘이 감옥만이 아니라 학교나 다른 사회의 기관에도 응용될 수 있다는 벤담의 주장에 착안한 푸코는 파놉티콘이 영혼의 규율을 가능하게 하는 '감시의 원리'를 통한 '권력의 기술'이기 때문에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다고 해석하였다. 결국 이 해석 속에서 푸코는 현대 사회가 파놉티콘, 즉 거대한 감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반해 셈플은 파놉티콘이 위생적인 화장실과 환기시설, 중앙 냉난방 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외부에 (시민들에게) 운영을 공개하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감옥이라고 주장하였다. 파놉티콘은 억압과 굶주림, 질병, 죽음의 공포로부터 죄수들을 해방시켜준다는 것이다. 또한 셈플은 푸코의 논의가 실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과 해석이라기보다는 현대 사회에 대한 철학적 비판이라고 지적하였다. 한편 힘멜파브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추구'로 잘 알려진 벤담의 공리주의 철학의 근저에는 사회 다수의 행복을 위해 죄수를 '영원한 고독'의 상태로 24시간 감시하며 이들에게 감자만 먹인 채 강제노동을 시키고 그 결과를 착취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파놉티콘이 존재했다고 주장하였다. 말하자면, 벤담의 파놉티콘에서 볼 수 있는 개혁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동정에서 비롯되어 이들의 권리를 되찾게 해주는 개혁이 아니라.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권리를 억누르고 희생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이 힘멜파브의 지적이다.
대표적인 세 사람의 주장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벤담의 파놉티콘을 바라보고 있다. 푸코는 권력을 중심으로 파놉티콘의 체제를 바라보았고, 셈플은 감옥으로서의 파놉티콘을, 힘멜파브는 파놉티콘의 밑바탕이 되는 공리주의를 비판함으로써 파놉티콘을 평가하였다. 굳이 세 관점 중에서 개인적인 견해와 가장 부합하는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힘멜파브의 그것이 가장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푸코의 주장처럼 현대 사회에서도 비대칭적 시선(정보)와 권력의 문제가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사회와 파놉티콘 간에는 큰 차이가 있으며, 파놉티콘 자체에서는 권력이 중심 문제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셈플은 파놉티콘의 시설이 기존의 다른 감옥들에 비해 매우 잘 갖추어져 있고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죄수들의 삶이 더 인간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파놉티콘 안의 죄수들은 물질적인 행복의 조건은 갖추었을지라도, 그보다 더 큰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될 수 있다. 일반 감옥에서는 적어도 자신의 방 안에서는 제한된 범위 내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간수가 그들을 감시하러 올 때에는 규율을 엄격히 지키지만, 간수가 그들을 감시하지 않을 때에는 감시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들의 마음대로 (정해진 한계 내에서)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파놉티콘에서는 간수가 죄수들을 감시하고 있는지의 여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그들이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매 순간마다 자신의 행동을 제약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자유의지를 억누르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또 다른 형벌인 것이다. 한편 힘멜파브의 주장은 위에서 잠시 언급하였던 공리주의를 토대로 한 파놉티콘의 모순과 부합하는데, 이는 즉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서는 소수의 권리와 인격을 무시할 수 있다는 공리주의의 이중적인 논리가 파놉티콘의 원리의 기저에 깔려있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파놉티콘은 벤담이 다수의 행복보다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세우고자 했던 것이라는 점에서 비판될 만하다.
2. 공장의 파놉티콘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파놉티콘, 벤담, 감옥, 사회, 죄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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