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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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탈춤(가면극, 탈놀이)의 기원

Ⅱ. 탈춤(가면극, 탈놀이)의 탈

Ⅲ. 탈춤(가면극, 탈놀이)의 공연방식
1. 상연시기와 시간
2. 연희형태
3. 악기
4. 연희자
5. 탈

Ⅳ. 탈춤(가면극, 탈놀이)의 표현매체

Ⅴ. 탈춤(가면극, 탈놀이)의 교육자료
1. 프로그램 작성
1) 초기 화면 만들기
2) 첫 메인 화면 만들기
3) 전체 탈놀이 유래 및 분포 만들기
4) 탈놀이 해설 육성 녹음
5) 탈놀이 대본 마당 만들기
6) 탈마당 만들기
7) 동영상 마당 만들기
2. 자료 적용 단계

Ⅵ. 탈춤(가면극, 탈놀이)와 놀이꾼

Ⅶ. 탈춤(가면극, 탈놀이)와 꼭두각시놀음
1. 제1막
2. 제2막
3. 제3막
4. 제4막
5. 제5막
6. 제6막
7. 제7막
8. 제8막

참고문헌

본문
Ⅰ. 탈춤(가면극, 탈놀이)의 기원

이두현 교수는 탈놀이의 기원을 서낭제 탈놀이와 산대도감계통극으로 나누어 논의하였다. 하회별신굿탈놀이.강릉관노가면극 등 서낭제에서 놀았던 서낭제 탈놀이는 서낭제에서 기원하여 발전한 토착적 탈놀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서울 근교의 산대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는 산대도감계통극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종래의 산대희기원설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즉 이두현 교수는 산대도감극의 춤과 연기는 나례의 규식지희(規式之戱)에서, 대사는 나례의 광대소학지희(廣大笑謔之戱)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 처용무와 나례를 산대도감극, 즉 탈놀이의 선후 공의(公儀)로서의 나희(儺戱)가 급격히 쇠퇴하고, 영 정조 이후 나희가 국가적인 행사로는 폐지되자 그 연희자인 팽인( 人: 편놈)들이 민간에서 탈놀이인 산대놀이를 시작했고, 그러다가 연희자들의 지방 분산으로 각 지방의 탈놀이가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조동일 교수는 최근 각 지방 탈놀이의 형성과정에 대한 자신의 기존 학설을 상당히 수정하였다. 우선 기존 견해를 살펴보자. 조 교수는 탈놀이가 농악대 주도의 풍농굿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였다. 마을굿에서 농악대의 탈을 쓰고 노는 무리가 잡색으로 따라다니며 이따금씩 허튼 수작을 하기도 하지만, 마을굿을 하는 원래의 행사가 끝난 다음에 기회를 얻어서 놀이를 한바탕 따로 벌인 것이 탈놀이라고 하면서, 탈놀이가 마을굿에서 자생적으로 생성.발전했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탈놀이를 농촌탈춤과 도시탈춤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농사가 잘 되게 하려는 마을굿에서 농악대의 잡색들이 노는 놀이가 발전하여 농촌탈춤이 형성되었고, 18세기 중반 농촌탈춤이 상인.이속의 도시탈춤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탈놀이 연구의 초창기부터 가장 유력한 학설이었던 산대희기원설.산대도감극계통설과 대립되는 입장이다. 조동일 교수는 국가적인 축제로서 공연되던 산대희나 나례희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은 하층민인 재인 광대들이었고, 탈춤 공연자들이 나례도감의 명령에 따라 나례희의 공연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 해도, 탈춤의 형성은 국가적인 행사와는 별도로 존재하던 민중적 전승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면서, 탈놀이의 산대희 산대도감계통극 기원설을 부정하였다.
그리고 서울 근교의 탈춤인 산대놀이는 다른 지방의 탈춤보다 일찍 도시탈춤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인정될 수 있는 일이고, 양주와 송파의 별산대놀이는 본산대놀이의 분파일 것이지만, 서울 근교의 산대놀이가 전국적으로 전파되어 각 지방의 탈춤을 이루었다는 견해는 각 지방의 농촌탈춤의 발전으로 도시탈춤이 이루어졌다는 결론에 비추어 볼 때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산대놀이는 각 지방 탈춤의 모체라기보다 오히려 아주 특이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산대놀이.해서탈춤.야류.오광대에서 발견되는 공통점도 모두 교류와 영향의 결과로 처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노장과장.양반과장.할미과장이 여러 탈춤에 두루 나타나고 그 구체적인 전개마저 유사하다고 하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탈춤의 모체였던 굿 자체의 특징에서 유래한 것이며, 탈춤 발전의 사회적 여건 및 이와 관련된 주제의식의 공통성을 근거로 이루어졌으리라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촌탈춤이 도시탈춤으로 발전하면서 교류와 영향이 생길 수 있는 기회는 확대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탈놀이의 기원에 대한 입장은 고수하면서도, 각 지방 탈놀이의 형성과정에 대해서는 견해를 많이 수정하였다.

Ⅱ. 탈춤(가면극, 탈놀이)의 탈

통영오광대의 양반탈은 원양반탈, 둘째양반탈, 홍백양반탈, 비틀양반탈(비뚜르미탈), 곰보양반탈(손님탈), 검정양반탈(먹탈, 흑탈), 조리중탈이 있는데, 1964년에는 바가지탈이었으나 현재는 오동나무로 만든다. 원양반탈은 1964년에는 안색이 흰색이었으나, 현재는 살색이고, 눈썹과 수염은 검다. 차양반탈은 원양반탈과 비슷한데, 다만 원양반탈은 이마에 주름살이 세 개이고, 차양반은 두 개이어서 연령의 고하를 식별할 수 있다. 그러나 '원양반은 얼굴이 둥글고, 차양반은 길쭉하다'는 1964년의 보고에 따르면, 얼굴의 윤곽에 의해서도 구별되었던 것 같다. 홍백탈은 얼굴의 우측은 홍색이고 좌측은 백색이며, 비뚜르미탈은 모피를 입히고 왼눈은 동글게, 오른눈은 길쭉하게 구멍을 뚫어 짝눈으로 만들고, 코도 비뚤어지게 붙이고, 입도 비뚤어지게 파서 눈.코.입이 좌우 비대칭이 되게 만들어 흉측하고 혐오스런 인상을 준다. 손님탈은 황색의 안면에 갈색의 반점을 무수히 찍어서 손님을 앓아 얽은 얼굴(곰보)을 나타낸다. 검정탈은 안색이 검정색이며, 오른 눈은 동글게, 왼눈은 가로로

참고문헌
박진태(2005) : 문학과 탈놀이에 나타난 소외의 극복 방식과 소외인의 형상, 비교민속학회
박진태(2005) : 세시풍속의 관점에서 본 탈놀이의 유형과 갈등구조, 한국공연문화학회
이미원(2011) : 한국 탈놀이 연구, 연극과인간
정형호(2009) : 한국 탈놀이의 형성 관련 쟁점에 대한 토론문, 한국민속학회
전경욱(1997) : 탈놀이의 역사적 연구, 한국구비문학회
정형호(2007) : 한국 탈놀이에 나타난 무언의 의미와 기능, 한국공연문화학회

키워드
탈춤, 가면극, 탈놀이, ,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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