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6일 토요일

영화의 이해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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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아일랜드> : 환상과 현실, 무엇이 진실인가?
'셔터아일랜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마크 러팔로가 주연을 맡고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을 맡은 2010년에 개봉한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입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경찰이야기 '디파티드' 이후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냈습니다. 정신병자의 심리세계를 드라마틱하게 재조명해 재현해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전쟁과 상처, 우울증이 빚어진 한 개인의 치명적인 상흔이 만들어낸 현대인의 정신심리학적 분석을 스크린을 통해 완벽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스릴러 영화들과 차별적입니다. 정신착란 자체는 사실상 미스터리입니다. 이 영화는 그런 점을 가장 설득력 있게 잘 표현한 영화입니다. 정상인들이 볼 때 정신착란은 분노와 공포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정신분열은 현실을 환상으로 또 현실로 조합해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정신착란의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짐작하게 됩니다. 정신착란의 세계가 우리 너머의 딴 세계가 아닌 바로 자신의 과거사적 심리형태에 의한 왜곡과 정당화이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현실의 극한적 괴리와 고립감은 단절된 현대의 질서를 왜곡시켜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은 전체적으로 음산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나고 시간 순서에 상관없이 어지럽게 교차편집이 되어 보여지고 있습니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중간 중간에 복선을 심어 관객들로 하여금 무엇이 진실인지 끊임없이 생각 하게 하는 그런 영화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반전의 총체적 완성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차별적입니다. 인물이나 매개된 사건의 역전이 아닌 이야기 전체가 반전이라는 점에서 순순히 반전으로만 볼 수 없게 만듭니다. 또한,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조합하면서도 극도의 호러적 공포감을 절제한 탁월한 심리적 전개도 돋보입니다. 풀리지 않는 질문들과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보일 듯 말듯 한 안개의 움직임이나 무거운 톤의 영상 처리는 미스터리함을 증폭 시키는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냅니다. 저는 이러한 영화의 특징 때문에 영화의 결말을 놓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치밀하게 계획된 사실에 포획된 수사관이라고 볼 것 이냐 아니면 그저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정신병자라고 보아야 할 것 인가 이러한 두 가지 결말에 대해 보고서를 써보려고 합니다.
<트라우마가 만든 환상의 세계 - 첫 번째 결말>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주인공의 환상속의 자아인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과거에 2차 세계대전을 참전한 군인 이었으며 다카오수용소라는 곳에서 항복한 수용소의 군인들을 무차별하게 사살하는데 가담했고 그의 아내는 '래디스'라는 방화범이 저지른 화재에 의해 질식사 했으며, 지금은 연방 보안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방 보안관으로서 테디는 셔터아일랜드라는 정신병동의 환자가 실종되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셔터아일랜드로 갑니다. 실제의 현실속의 자아인 앤드류 래디스는 과거에 군인으로 참전한 적은 있으나, 수용소 같은 곳에 간적은 없으며 전쟁의 후유증으로 알코올 중독이 되고 그 때문에 아내와 두 아이를 잃게 됩니다. 그 충격으로 래디스는 테디라는 환상 속의 자아를 만들고 거기에 스스로를 대입하였습니다. 그러한 행동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트라우마' 때문입니다. 트라우마의 사전적인 의미로는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원인' 이지만, 영화에서 내링(막스 폰 시도우)박사는 이 단어가 그리스어로 '상처'라고 정의 합니다. 간단히 정리해 보면 이 영화에서 트라우마는 '정신적인 상처'로 보면 됩니다. 그럼, 무엇으로 인한 정신적인 상처인가 하면, 그건 바로 '아이들과 아내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한 상처입니다. 그 죄책감 바로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기제로써 래디스는 테디라는 환상 속의 자아를 만들었고 자신과 이름이 같은 가상의 방화범까지 같이 만들어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화 속에서 공간의 측면으로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극중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나오는 말이 바로 본토라는 말입니다. 이 본토라는 것은 단순하게는 미국 본토를 말하는 것이지만 그것의 진의는 상징적 기표로서의 사회를 의미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 초반에 테디가 배를 타고 바로 섬으로 직행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상징적 기표인 사회를 떠나 그가 무의식에 갇혀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즉 섬이라는 공간 자체가 테디의 내면을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섬에서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는 점점 공간을 좁혀 나갑니다. 처음엔 섬에만 들어왔던 그는 더 깊은 C병동으로 진출하게 되고 그 이후 더 깊은 등대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공간의 좁힘은 테디가 보여주는 내면의 무의식적 욕망의 깊음을 상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보면 테디는 현실을 부정하는 환상속의 자아지만 한편으로 행동이나 과거회상에서는 현실의 자아인 래디스의 모습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테디의 첫 등장 장면을 생각해보면 테디는 배 멀미로 고생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서 테디는 "진정해 저건 그냥 물이야" 라는 대사를 합니다. 그리고 영화 곳곳에서 아내가 환상이나 꿈에서 등장 하게 되는데 아내는 항상 물에 젖어 있는 상태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현실을 잊으려고 만들어낸 환상속의 자아 테디 이지만 자기도 모르게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으며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에서 완벽하게 적응 하지 못하고 실제 자아인 래디스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테디가 환상 속에서 자신이 만든 방화범을 직접 만나는 장면이 한번 나옵니다. 얼굴에 끔찍한 상처가 있는 괴물 같은 사람이 테디를 보고 반가워하고 그 방화범은 품속에서 술을 꺼내며 "이게 필요할거야"라며 테디에게 건넵니다. 내링 박사가 말한 '상처가 만들어낸 괴물'이 바로 이 방화범 래디스이고, 이 래디스가 원래 알코올중독에 폭력적이었던 실제 자아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테디는 그런 래디스가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 차리지 못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테디가 동굴에 가기 바로 전의 장면을 보면 테디와 척(마크 러팔로)은 절벽에서 논쟁을 벌입니다. 이 때 척이 67번째 환자인 래디스의 기록을 찾았다며 테디에게 건내주려 하지만 이상하게도 테디는 래디스라는 방화범의 존재를 계속 찾았으면서도 끝내 그 기록을 보지 않습니다. 그 래디스라는 환자에 대한 신상기록, 그것은 곧 현실 속의 자신에 대한 기록이고 그것을 보게 되면 테디라는 자아는 근거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다음 장면에 척이 절벽에서 담배 하나만을 남겨놓고 없어지고, 절벽 밑에는 척으로 보이는 사람이 누워있는걸 보고 테디는 절벽 밑으로 내려갑니다. 이 때 바람에 날려 아까의 그 래디스의 신상기록이 적힌 종이가 테디 곁으로 날아오고 테디는 이 종이를 잡지만 끝내 보지 않습니다. 이처럼 테디는 셔터아일랜드를 누비고 다니면 다닐수록 테디라는 자아에 대한 근거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테디는 애써 그것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테디는 자신이 아내를 죽이고 자신 때문에 세 아이를 잃었다는 죄책감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대 계획에 사로잡힌 수사관 - 두 번째 결말>
저는 두 번째 결말로 영화를 바라보며 구조주의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구조주의란 무엇일까? 이를 논하기 위해선 데카르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데카르트는 이런 의문을 품었습니다. '내가 느끼는 게 정말 느끼는 것일까?', '나의 몸뚱이는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어떤 악마가 나를 기만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의문에 의해서 데카르트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데카르트적 회의 또는 방법론적 회의라는 것입니다. 영화로 돌아가 보자면 영화는 거대한 섬에 따로 놓여있는 존재입니다. 끊임없이 본토를 이야기하지만 영화에선 본토는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옆에 사진의 영화 속 병동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말이 정신병동이지 생긴 것은 완벽한 파놉티콘(Panopticon) 입니다. 파놉티콘이란 영국의 철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일종의 감옥 건축양식을 말합니다. 둥근 형태의 구조물이며 중앙에 탑이 존재합니다. 탑에서는 죄수들을 바라 볼 수 있지만 죄수들은 그 탑에 감시자를 볼 수 없게 되어있는 시스템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중앙의 탑에 감시자가 없더라도 죄수들은 그들을 볼 수 없기에 스스로 권력에 훈육 되어간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게 되는데 특히 구조주의와 관련하여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군대, 학교, 병원 등 이런 기관들의 공통점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을 교육하고 욕망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인데 비슷한 방식으로 훈육을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 훈육의 궁극적 목적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훈육의 특징은 어떠한 절대 권력이 존재하여 억지로 이루어지는 것 이라기보다는 사회관계의 그물망 속의 내부권력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위계질서라는 특정한 감시시스템을 통해 행사되는 이러한 권력은 아주 기계적이면서 항구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이 기계 시스템 속에 우리 스스로가 속해있으면서 권력을 분유한 채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파놉티콘 적인 특징을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는 C병동 그 자체이고 둘째는 섬과 그 섬에 놓여있는 등대라는 것을 통해서입니다. 결국 이러한 결론과 철학으로 영화를 바라본다면 영화의 결말은 정말 소름끼치게 다가오게 됩니다. 도대체 한명의 주체로서의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어디에 있는가? 그는 철저하게 구조라는 권력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인물이 됩니다. 즉, 영화는 어떤 식으로 한 인물을 권력관계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가? 라는 측면을 정확히 짚어내는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인 테디가 실종자인 레이첼 솔란도를 만나는 동굴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에서 레이첼은 "정신병 판정을 받으면 무슨 짓을 해도 미친 것처럼 보인다고요" 라는 말을 합니다. 이 대사를 보면 한 인물을 권력관계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마지막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장면, 권력, 정신착란, 세계, , 방화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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