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부끄럽게도 조선 왕실의 사당인 종묘에 대해서 가본적도 없고, 아는 지식도 거의 없었다. 간혹 경복궁은 가지만 종묘에 대해서는 그 위치조차 자세히 몰랐다. 수업을 들으며 종묘에 대해 개략적인 배경지식을 알게 된 후 종묘에 대한 묘한 매력에 이끌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직접 종묘에 감으로써 종묘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픈 생각은 내 발길을 종묘로 이끌게 했다. 사적 제 125호인 종묘는 국내에서 석굴암 불국사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종묘는 1394년 태조 이성계가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면서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세워졌다. '궁궐의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는 주례에 따라 종묘의 위치는 경복궁의 왼쪽에 자리를 잡았다. 태조 이성계는 4대 추존왕(목조, 익조, 도조, 환조)을 정전에 모셨다. 이후 세종 때 정종이 죽자 정전이 부족해서 영년전을 세워 4대 추존왕의 신위를 옮겨 모셨다. 정전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 1608년에 소실된 정전을 다시 지었으며 현재의 19칸 건물은 몇 차례의 보수를 통해 보존된 상태를 보여준다. 정전에는 19분의 왕과 30분의 왕후를 모시고 있다. 영녕전도 정전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어 1608년 다시 지어졌다. 영녕전은 16칸에 15분의 왕과 17분의 왕후 및 조선 마지막 황태자인 고종의 아들 이은과 부인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정전 앞뜰에는 공신당이 있는데 공신당은 조선시대 83명의 공신이 모셔져 있다. 종묘는 16세기 이후 현재까지 그 원형을 잘 보존하고 유지한 건축물이다. 또한 종묘의 규모는 동시대 단일목조건축물 중 연건평규모가 가장 크다. 그러나 화려함 같은 장식적인 것이 없으며, 검소함과 단아함 속에 장엄함이 느껴지는 건축물이다. 이는 돌아가신 왕의 혼이 머무는 공간이니 만큼 궁과 다른 건축적 특징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궁궐은 화려함으로 가득한 공간이라면, 종묘는 조용하고 단아한 공간이다. 특히 종묘의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빼어난 한국의 전통 건축기술을 자랑한다. 곡선미를 강조한 팔작지붕이나 화려함을 강조한 우진각지붕과 다르게 간결하고 웅장함을 드러내는 종묘의 맞배지붕은 종묘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종묘에 들어가기 전 하마비를 볼 수 있었다. 하마비는 1663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종묘 앞 공원에 있다. 가마에서 내리라는 뜻의 하마비는 왕이라 할지라도 외대문에 이르면 내려서 걸어 들어가야 했다고 한다. 하마비를 지나면 종묘로 들어가는 정문을 볼 수 있다. 종묘의 정문은 외대문(또는 창엽문)이라 불리며 정면과 측면의 맞배지붕으로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단정한 모습 속에 위엄을 과시하는 외대문을 통해서 맞배지붕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외대문을 통과하여 종묘로 들어가면 삼도를 볼 수 있다. 삼도는 울퉁불퉁한 박석으로 깔린 3줄의 길로 가운데는 신이 다니는 '신로', 오른쪽은 왕이 다니는 '어로', 왼쪽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이다. 삼도를 거친 돌로 깔아 놓은 이유는 경건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라는 선조들의 뜻이 담겨 있다. 삼도를 따라 올라가면 정전 남문이 나온다. 정전 남문은 '남신문'이라고도 불리며 신이 드나드는 문으로 신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사람이 출입할 수 없다. 남문을 지나 우측에 공신당이 있다. 나라에 많은 공을 세운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건물이 긴 이유는 공신이 늘어남에 따라 증축된 결과이다. 조선 왕조 역대 왕들의 공신 83신위를 모시고 있으며 창건 당시에는 담장 밖에 있다가 태종 때 담장 안으로 옮겨졌다. 정전 남문의 왼편에는 칠사당이 있다. 칠사당은 맞배지붕의 3칸짜리 작은 집이다. '칠사'는 인간의 삶과 생활에 관여하는 일곱 신을 의미하고 이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곳이 칠사당이다. 정전은 종묘의 중심건물로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신주가 보관된 곳을 신실이라 한다. 정전의 신실에는 큰 업적을 남긴 19위의 왕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신실 한 칸에 한분의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으며, 정전은 총 35칸의 일자형 건물로 조선 역대 왕과 왕비 49위 신주를 19실에 봉안하고 있다. 정전은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증축이 이뤄졌는데 지대석에 남아 있는 증축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전체적인 정전의 느낌은 경건하면서 묵직함 속에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다. 정전의 바로 옆에 영녕전을 볼 수 있다. 영녕전은 정전과 마찬가지로 종묘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세종 때 신실이 부족하게 되어 정전 서쪽에 새로 지은 것이 영녕전이다. '영년'은 조종과 자손이 길이 평안하라는 의미를 갖는다. 영녕전의 지붕은 정전과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영녕전에는 가운데 4개의 방을 양쪽 옆에 딸린 방들보다 높게 꾸며놨다. 각 방에는 태조의 4대조와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제사를 드리는 목적에 맞게 구조가 간결하며 정전과 마찬가지로 경건함과 장중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정전과 영녕전을 본 후 내려오는 길에 재궁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제대로된 탐방코스라면 정전과 영녕전을 보기 전에 재궁을 봤어야 했다. 그 이유는 재궁이 제사 하루 전 왕과 세자가 머물며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재궁의 가운데는 임금이 머물며 동쪽에는 세자가 머물렀다고 한다. 가운데 건물이 동쪽 건물보다 높은 것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종묘 안에는 공민왕 신당이 있다. 고려 31대 공민왕을 위하여 종묘와 함께 창건한 것이라 한다. 정식명칭은 '고려 공민왕 영정 봉안지당'이다. 조선왕실의 사당인 종묘에 고려의 왕인 공민왕을 모셔놓은 신당이 있다는 것이 매우 특이하게 느껴졌다. 종묘에 공민왕 신당이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들이 갈린다고 한다. 종묘가 나에게 주는 느낌은 차분함과 엄숙함이었다. 엄숙함 속에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를 느낄 수 있어서였다. 이번에 종묘를 다녀오면서 아쉬움도 많이 있었다. 일단 종묘 주변의 환경이 아쉬웠다. 상당히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무질서한 느낌이었다. 조선시대 왕실의 사당이라는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지니는 종묘의 가치를 훼손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외대문을 통과해서 삼도를 볼 수 있는데, 삼도에는 삼도 위를 걷지 말라는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을 무시한 채 삼도 위를 걷는 사람들이 자주 보였는데, 종묘를 관리하시는 분들이 제지를 해야 한다 생각했다. 나는 종묘 자체가 아닌 종묘를 관람하는 사람들과 관리하는 쪽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종묘를 찾아서 종묘의 아름다움과 경건함을 느겼으면 좋겠다. 내가 종묘에서 받은 느낌은 여태껏 느끼지 못한 신선함이었으며 조만간 다시 종묘를 찾아서 이번 탐방에서 얻지 못한 새로운 느낌을 얻고 싶다.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종묘답사, 종묘, 답사 |
2017년 12월 25일 월요일
종묘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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