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려 초기의 사회는 호족연합형태로부터 귀족사회로 발전하여 갔다. 이러한 고려 귀족사회의 구체적인 발전상을 태조 때부터 무신란 전까지의 전과정이 아니라, 성종 (981~997)을 중심으로 한 시대, 즉 10세기 말에 있어서의 귀족사회의 형성과정에 초점을 두고 설명할 것이다. 태조 왕건으로 하여금 고려를 건국하고, 나아가서 후삼국을 통일하게 한 배후의 세력을 개국공신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광종의 개혁은 이 세력들을 억압하였고, 특히 개국공신의 세력을 거의 뿌리뽑다시피 하였다. 광종이 죽고 경종이 뒤를 이었는데 이때 광종의 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인물은 하나도 남지 않고 제거되었다 새로이 정치권력에 참여한 것은 태조 떼 중앙정치세력의 중심이 되었던 개국공신 계열의 세력이었다. 경종이 즉위했을 당시에 집정이 되었던 왕선은 그러한 계통으로 생각된다. 또한 경종대의 정치를 논함에 있어서 그의 배향공신인 최지몽과 박양유, 역시 모두 개국공신이었다. 그러나 이 세력은 오래 유지되지를 못하였다. 비록 광종의 시대는 갔으나 구신 숙장들이 다시 정권을 감당해 나갈만큼 세력이 크지 못했다는 뜻을 나타내 주기도 한다. 성종 때에 이르면 이들 개국공신 계열은 역사에서 점점 막후로 물러나게 되고 그 대신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였다. 성종대의 정치세력을 살피기 위해서 성종 때에 활약하던 인물들을 검토할 때, 우선 주목에 오르는 것은 성종의 배향공신들이다. 성종의 배향공신은 처음 목종 1년(998)에 최승로와 최량이 책봉되었으나, 현종 18년(1027)에 이지백서희이몽유 등이 추가되어 모두 5명에 이르렀다. 이들이 배향공신이라고 해서 그들을 통해서 당대의 정치를 일관해서 직선적으로 추론할 수 없다. 적어도 이지백과 서희는 그들을 책봉한 현종대의 정치적 성격과 떠나서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은 이지백서희의 계통(대체로 근기지방의 호족 출신 세력으로 생각된다)이 성종 후년부터 강력하게 등장하여 그 영향력이 현종 때까지 크게 미치고 있던 결과로 볼 수 있다. 그 대신 최승로최량이몽유 등은 성종 때 특히 그 전반기에 있어서의 유교적 정치와 밀착된 인물들로 생각된다. 특히 최승로와 최량이 그러하였다. 목종 원년에 최승로와 최량의 두 사람을 성종에 배향한 것은 그런 점에서 가장 적절하게 생각된다. 그리고 이들은 신라 육두품 출신이거나 혹은 그에 동조하는 인물들이었다. 즉 성종대의 배향공신을 통해서 전반기에는 신라 육두품 계열의 유학자에 의한 정치세력이 지배적이다가, 후반기에 들어서면 지방호족 계열의 다른 세력이 성장하여 이와 대립하게 되었고, 이 후자가 현종대의 지배세력으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한 결론은 내사문성에서 활약하던 인물들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가 있다.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성종, 지배, 성종대의, 정치적, 세력 |
2018년 5월 5일 토요일
성종대의 정치적 지배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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