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15일 일요일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읽고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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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존 쿳시의 작품을 통하여 본, 우리가 여전히 문학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
T20110400
작가가 설정한 문학작품 속 장치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게 하여 준다. 빠른 내용전개의 문학작품들과는 달리,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읽는 내내 이 장면들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면모를 온전히 지니고 있다. 이러한 해석 작업 없이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한 줄 한 줄 읽어나간다는 것은 무의미했다. 실제로, 이런 작업에 지쳐갈 때쯤 그냥 줄거리부터 파악해보자 하고 일단 넘어갔다가, 되려 한 장도 더 읽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와야 했다. 스토리 전개에 중점을 두고 쓰여 진 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치안판사가 자기반성에 이르는 과정을 쫓아가기 위해 그가 하는 한마디, 죨 대령의 행동들, 그리고 치안판사의 꿈에 등장하는 야만인 소녀의 모습 묘사, 그리고 야만인 소녀가 이야기하고 있는 말 속에서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특정한 의미를 끊임없이 찾아내어야 했다.
이러한 의미부여 과정을 통해 독자가 각자 나름대로 해석한 문학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완전히 일치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꼭 의도와 해석의 정확한 일치만이 이상적인 문학작품 읽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와 다른 시각에서 작품을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새로운 해석'이라는 면에서, '작가의 해석'에 필적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독자 스스로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의미를 묻고 답하는 자문자답 과정은 결국 작가와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진다고 이야기 될 수 있을 것이기에 그 자체로써 또 다른 의미를 갖는 활동이다. 의미 부여의 확장은 단순한 '문학작품 읽기'를 넘어서서, 독자 앞에 여러 상황들이 놓여있을 때 마치 문학작품에서의 은유를 읽어내는 것과 같이 무리 없게 매 순간을 읽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또 다른 문학작품의 역할중 하나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간접 경험을 하게 하여 준다는 것이다. 이는 독자가 단순히 작품을 '읽는 것' 을 넘어서 작품 속 인물들에게 자기 자신을 투영시킴으로써 비로소 이루어지게 된다. 작품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읽으며 우리는 소극적인 치안판사가 되어 야만인들의 학살과정을 지켜보기도 하고 그가 절규하고 투옥되는 장면에서는 함께 고통스러워한다. 또, 때로는 야만인 소녀가 되어서 그녀가 겪은 육체적, 정신적 아픔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기도 한다.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주인공들은 특히 내면을 고백하는 듯 한 어조로 작품을 구성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면서 때로는 자멸에 가까운 고백을 하고 있다. 이러한 속성은 읽는 이가 자신을 등장인물에게 더 효과적으로 투영시킬 수 있게 하여 준다.
문학 작품 읽기를 통한 간접 경험은 궁극적으로, 마음의 위안이나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여 줄 뿐만 아니라 이의 축적은 인생에 대하여 성찰하는 기회를 가져 주기도 한다. 작품을 읽는 우리들은 대개 우리 자신을 작중인물의 하나로 작품 속에 세워 둔다. 이러한 모습을 일상적으로는 '작품에 심취하여 읽는다.'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심취하여, 야만인들에게 가해지는 무자비하고 무조건적인 폭력행위를 보고 있노라면 그 학살 앞에 위압감을 느끼며 감히 저항을 할 수 없고 복종하게 됨을 느낀다. 그리고 '만일 나라고 해도 초반부의 치안판사와 같은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 이외엔 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에 이르며, 이는 우리에게 '정의의 실현'이라는 가치 구현의 실패라는 맥락에서 독자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와 마찬가지인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주인공인 치안판사를 보며 우리 모두가 그러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음을 오롯이 위로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위로는 위로 그 자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현실을 올바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도움으로써 반성적 사고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독자의 지식 확대 방향을 결정한다. 우리가 지식을 확장하고 이용하는 것을 어떠한 방향으로 잡을 것인가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게 된다. 결국 다시 이야기해서, 독자는 문학작품을 읽음과 동시에 반성적 사고를 통해 지식을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형시키거나 확대 혹은 재생산 한다. 이러한 반성적 사고는 윤리라는 측면에서도 살펴 볼 수 있다. 그 예로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주인공을 보자. 주인공인 치안판사는 죨대령의 편에 서서 자신이 늘 해온 직무를 수행하며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는데도 결국은 자신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못하는, 자멸에 가까운 고백을 했던 것일까? 사람은 왜 진실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의 편에 서려고 하는 걸까? 존 쿳시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우리는 모두 진실에 대한 개념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이죠." 존 쿳시의 이 말은 글쓰기는 궁극적으로 윤리적인 것일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이렇게 쓰여진 문학작품을 읽는 것 역시 윤리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는 잊혀져가는 역사적 진실을 다시금 상기시킬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미 추문이 되어버린 부끄러운 과거의 사실들은 현대의 문학작품을 통해 재해석 되며 되풀이해서 이야기 되곤 한다. 전쟁이나 식민지배, 민족 학살 등의 어두운 역사적 사실들이 이에 속하는데, 이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이룸으로써 독자들에게 '문학작품'이라는 매개물을 통하여 반복 읽힌다. 이러한 배경들은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던져준다. <야만인을 기다리며> 역시 제국주의자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야만인들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탄압이라는 안타까운 현실을 숨김없이 낱낱이 이야기 해 주고 있는 작품이다.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기다리며, 야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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