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9일 일요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과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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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철학 강의를 듣기전부터 가장 관심이 많이 갔던 철학자가 소크라테스이다. 아는 철학자가 소크라테스 밖에 없어서가 아니고 소크라테스가 많이 알려져 있는 만큼 그가 남긴 업적이나 철학들이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예전부터 소크라테스에 관한 책이나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었다. 소크라테스가 직접 남긴 책은 없지만 그가 남긴 말들과 사건을 알려주는 문헌들이 많이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친구같은 제자 플라톤이 남긴 책들을 읽어보면 그가 스승을 얼마나 존경 했었는가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2.시대적 배경
소크라테스가 죽기 바로전인 페리클리스(B.C 495?-429)시대 때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전성기였다. 그때 아테네는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페리클리스가 죽기 직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남으로써 위기에 빠졌다. 귀족파와 민주파간에 내분이 치열하게 일어났는데, 이 내분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귀족파는 스파르타와 화해하기를 요구했으며 민주파는 전쟁을 계속하기를 바랐다.
기원전 404년 스파르타군이 마침내 아테네 성벽을 포위하고 이것을 빌미로 귀족파가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정치싸움은 정점에 이르렀다. 아테네에 30인의 독재정치가 들어선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였던 크리티아스가 당시 지도자였는데 그는 반대파를 대규모로 숙청하였다. 그 뒤로 기원전 402년에 스파르타 군이 물러난 다음 아테네에는 민주파의 반쿠데타가 성공하였고, 여기에 앞장섰던 아뉘토스는 30인 독재와 같은 체제가 다시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독재파를 없애기 시작했는데, 이런 일로 소크라테스가 고발당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된 것은 물론 제자들이 30인의 독재체제에 참가하였기 때문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민주제를 끊임없이 비판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테네사회가 위기에 빠지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정치가들의 무지와 도덕적 부패 그리고 혼란을 틈타 일신의 권력욕을 채우려는 일단의 무리들과 그들을 부추기는 타락한 지식인들에 있다고 보았다. 그의 철학적 소명이 끈질긴 문답을 통해 가차없는 풍자와 예리한 비평으로 무지와 탐욕에 빠진 무리들을 깨우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행적과 가르침은 이미 교만에 빠진 기득권자들에겐 전혀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 수록 자신의 무지가 공공연하게 더욱더 폭로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거짓 선동과 수사로 어떻게든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던 정치가들에게는 그것은 더더욱 위험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를 따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들중에는 훗날 30인 참주정의 핵심인물이 되어 말년의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곤경에 빠지게한 빌미가 되었던 크리티아스도 있었고 야망있는 젊은 정치가로서 소크라테스가 전장에서 생명을 구해준 알키비아데스 도 있었다. 그리고 당대의 명망있는 장군이었던 라케스,크세노폰등 소크라테스의 성격이 지니고 있는 매력과 고결한 성품에 이끌려 그와 평생의 친분을 나눈 사람들도 있었다. 시대적 배경에서 너무 자세히 설명을 한거 같은데 소크라테스의 생애와 플라톤에서 한번 더 자세히 기술하겠다.
3.소크라테스의 생애와 사상
소크라테스는 아테네가 페리클레스치하에서 영화를 누리던 시대인 기원전 470년에 아테네 중류가정에서 태어났다. 이 해는 아테네가 살라미스해전에서 페르시아함대를 궤멸시킨지 10년쯤되는 해다. 그의 아버지 소프로니스코스는 당시에 활발했던 아테네의 여러 석조건축계획에도 참여한 중견조각가였고 어머니 파이나레테는 산파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소크라테스도 젊은 시절 아크로폴리스의 카리타스군상이 그의 작품이라고 말해질 정도로 아버지의 직업을 이은 유능한 조각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미루어 소크라테스의 어린 시절의 환경은 경제적으로 그리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철학자로서 그의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상당히 훗날이었던 것 같다. 물론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는 어느정도 이미 잘 알려져 있는 학자이긴 했었다. 그러나 변명편에서도 나타나있듯이 포테이다이아 전투에 출정하기 직전에 카이레폰이 전해준 델포이의 신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무지의 지를 깨우치게하는 것이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평생의 소명임을 자각한 이후, 일관된 자신의 철학자적인 생애를 펼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430년 그의 나이 40세되던 때부터였던 것이다
B. C. 5세기경에는 소위 '소피스트'가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소피스트'라는 말은 원래 'sophos라는 말과 'sophia라는 말에서 유래한 지혜 있는 사람 또는 현명한 사람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소피스트는 하나의 학파로서가 아니라 당시의 개별적 지성인의 총칭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소피스트들은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갖춘 논객으로 당시의 법, 정의, 도덕, 질서에 대해 높은 지식을 갖고 철학적 사색과 철학적 논리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또 한편으로 실제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일반인에게 보수를 받고 실용적 지식 또는 기술을 가르쳐 주기고 하고 개인간의 송사에 돈을 받고 변론해 주기도 하였다. 대체로 소피스트들은 오늘의 실용주의자와 같은 성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를 위시한 당시의 도덕적 철학자들의 눈에는 소피스트들이 금전만을 밝히는 세속적인 인간으로 보여 그들을 맹렬하게 비난하였다. 이러한 사정이 후학들에게 잘못 인식되어 후세사람들은 소피스트들을 궤변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플라톤, 과제,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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