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권태의 사슬을 끊고 자궁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나' 학과 : 학번 : 이름 : 대한민국에서 '성' 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과거와 달리 개방된 사회를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 역시도 성에 대해 금기시 하는 사회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섹스'를 밝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 범람하는 포르노와 조건만남 채팅방, 평일에도 가득 차는 러브호텔만 봐도 우리는 '섹스'를 밝히면서 한편으로는 금기에 갇혀 정당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비웃기라도 하듯 앞서나간 선구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마광수 교수이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인 '성'을 터부시하고 거짓으로 포장된 순수함을 추구하던 한국 문단에 마광수 교수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과거 한국의 보수적인 정서상 마광수 교수의 예술성은 그에 합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결국 마광수 교수는 '외설 작가' 라는 창피한 수식어로 매도당했고 그의 작품 역시 비닐 포장지와 '19금' 딱지 속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마광수 교수의 '예술가에게 상상의 자유를 달라' 는 외침은 그런 수단으로 가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열망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며, 그보다 앞서 인간의 가장 오래된 본능인 '성'에 대한 담론을 그의 소설은 유쾌하고 발랄하게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비록 육체적 사랑을 강조하는 마광수 교수의 취향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일단 그의 소설은 문학 작품으로서 '재미'가 있기 때문에 꾸준히 읽힐 수밖에 없다. <권태>는 마광수 교수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쓴 에로티시즘 장편소설로서 성 심리 묘사를 수면 위로 끌어낸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소설 <권태>는 실제 마광수 교수와 매우 흡사한 주인공인 대학교수 '나' 와 클럽에서 만난 그녀 '희수' 가 등장한다. 주인공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며 매일 밤 권태와 외로움 속에 발버둥치는 인물이다. 어느 날 나이트클럽 '하렘'에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가 바로 마조히스트이자 '나'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희수' 이다. <권태>의 백미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 '나'와 '희수'의 질펀한 하룻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매저키즘, 사디즘, 페티쉬즘, 관음증 등을 총망라하는 솔직한 심리묘사가 두드러진다. 마광수 교수의 적나라하면서 자극적인 표현들이 혹자에겐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만큼 마광수 교수의 판타지적 상상력이 독자의 기대보다 뛰어나게 표출되었다는 반증이다. 즉 그는 시대를 앞서간 타고난 이야기꾼인 것이다. <권태>를 읽다보면 단순히 소설 속 인물들의 표면적인 이야기에만 몰입이 될 뿐만 아니라 소설 속 마광수 교수의 예술관, 인생관과 같은 철학에 주목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 예술가들에게 상상력의 자유를 달라' 는 그의 굳건한 믿음은 책을 관통하는 그의 예술관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권태>를 읽으면서 받았던 충격은 '채찍질'과 같이 독자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매저키즘-사디즘 적 행위를 뛰어넘는 과감한 수준의 묘사도 일체의 자기검열 없이 거침없는 표현으로 펼쳐질 때 극대화된다. 모두가 섹스를 금기시하고 고리타분한 사고에 갇혀있을 때 섹스를 수면위로 끌어올려 담론 화 시킨 장본인답게 마광수 교수는 오늘날 하드코어 포르노에서나 즐길 수 있는 스캇(scat) 플레이, 음부 피어싱 등을 거리낌 없이 소설 속에 펼쳐놓는다. 그의 이러한 관능적인 상상력은 엄숙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섹스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 '페티쉬' 에 눈을 뜨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다들 '긴 솝톱과 15센티미터의 하이힐' 과 같은 본인만의 페티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어떤 페티쉬에 흥분하는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광수 교수가 퇴폐적이고 '꼴마초' 적인 작가로 비난받는 것은 페티쉬를 통한 대리 배설의 카타르시스 효과를 인정하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권태>는 이러한 페티쉬를 통한 카타르시스 효과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소설이다. <권태>를 현실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사람들에게도 마광수 교수는 '예술표현에 있어서 판타지는 필수적인 것이며, 그 내용이 아무리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이라도 그것은 판타지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고 일침을 가한다. 다시 말해서 <권태>는 문학 작품을 문학작품 그 자체가 주는 재미로부터 분리시키고 무조건 위선적인 교훈과 사상성을 내포해야 한다고 믿는 문단 세계에 그야말로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권태>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라는 인물이 실제 마광수 교수와 매우 흡사한 점도 마찬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소위 말하는 대한민국 1류 작가들의 소설에는 작위적으로 메시지를 부여하거나 유교적 가치를 교훈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독자들은 이러한 소설에 쉽게 동감할 수 없고 거부감을 느끼기 쉽다. 반면에 마광수 교수는 비록 상상력으로 창조된 이야기일지라도 그의 소설에 거의 그 자신의 이야기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사실성과 현실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솔직함이 <권태>를 포함한 마광수 교수 작품이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그림책을 보듯이 생생한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 <권태>는 결국 인간이 고통과 권태의 쳇바퀴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해준다. 인간은 끊임없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짧은 쾌락 뒤에는 곧이어 그 끝을 알 수 없는 권태가 뒤따른다. 권태를 극복하면 고통이 따라오고 순간의 희열 뒤에는 또 다시 권태가 스며드는 사슬을 끊을 수 없는 것이다. <권태>의 주인공 '나' 는 이런 인간의 슬픈 권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원동력으로써 '희수'의 도움을 받는다. 매저키스트인 '희수'를 통해 페티쉬적 욕망을 충족하는 '나'는 결국에는 권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태의 태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궁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이 아닐까?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독자들을 상상력의 판타지 속으로 빨아들이던 이 소설은 슬그머니 우리에게 심오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비록 마광수 교수는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창밖으로의 탈출에 실패하는 나방을 보여주며 인간의 권태가 주는 체념을 우울하게 그려내는 듯 보이지만 '창조적 판타지'를 통한 권태의 극복 가능성 또한 열어두었다. '페티시스트', '변태', '외설작가' 등 마광수 교수를 칭하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 중에 '야한 남자 마광수' 만큼 그를 잘 대변할 수 있는 수식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그는 섹시하면서도 관능적인 상상력으로 독자들을 놀라게 하는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고 우리의 억눌린 감정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그의 호탕한 섹시함을 비뚤어진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서 예술가들의 미래는 아직도 어두운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이제 우리도 언제까지 숨어서 음흉하게 섹스를 훔쳐볼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떳떳하게 섹스를 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고민에서 시작된 마광수 교수의 작품들은 그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예술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언제나 선구자들은 고독하고 핍박 받는 법이다. 마광수 교수의 소설을 단순히 야설로 매도하지 않고 시대를 앞서간 천재적인 작품으로 인정하는 날이 올 때 비로소 우리 사회에 예술가들이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국문, 연세, 레포트, 대학교, 권태, 연세대학교 |
2018년 3월 3일 토요일
연세대학교 국문과 마광수 교수의 권태에 대한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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