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18일 수요일

유럽적 보편주의를 읽고

유럽적 보편주의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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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길가다가 불량배들에게 돈이나 금품을 갈취당하는 친구나 동생을 목격하고 있다면 어떡해야 할까. 그냥 모른척 하고 지나쳐가야 할까, 용기를 내서 구해줘야 할까. 내가 구하려는 이유는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보아서인가 내가 구해준 것에 대한 어떠한 보상을 바래서 인가. 괴롭히던 불량배들은 죽어 마땅한 걸까.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은 유럽적 보편주의, 권력의 레토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과 같은 맥락인것 같다.
저자 이매뉴얼 윌러스틴은 인류의 꽤 오래된, 그러나 너무나 편파적으로 쉽게 결정되버린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도와주는게 정말 사심없는 행동인가. 그리고 이러한 물음의 기원은 꽤나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 열강들의 패권주의가 난무하고 식민지열풍이 불던 때 강대국들은 식민지화에 대한 정당한 명분을 만들려 노력한다. 이런저런 종교적, 윤리적인 명분들을 갖다 세우며 식민지화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더욱 식민지화에 박차를 가한다. 식민지가 된 국가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도 절대 공감하기 힘든 명분일 테지만 약소국들의 입장은 강대국 앞에서 별다른 효력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식민지화를 추진하는 강대국 내부에서 이러한 명분에 의심을 품는 몇몇 사람들로 인해 커지게 된다. 솔직히 말해서 식민지화 시키는 r것이 식민지들을 위한 행동인가?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역시나 국가의 이익에 관여된 사업이나 일들에 의심을 품거나 반하는 이들은 마치 오늘날 무조건 종북이라 비난받듯이 내지는 매국노라고 비난받았음이 당연하다. 그런데 과거 에스빠냐가 잉카제국 내지는 인디오들을 지배하였을 당시 라스 까싸스라는 인물이 가진 의심과 반감은 나름대로 정당하고 공평한 판단과 토론과정을 거칠 기회를 갖게 된다. 그와 상반되는 의견, 즉 식민지화는 필수 불가결이라는 견해를 가진자는 그 당시의 대부분의 자들이었겠지만 쎄뿔빼다라는 인물이 까싸스와의 토론에 참여하게 된다.
쎄뿔빼다가 내세운 식민지화의 정당성은 당시 종교적, 윤리적 근거들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그의 첫 번째 주장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미개인들, 곧 단순하고 무지하며 문맹의 야만인들이어서 간단한 기술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결코 배울 수 없으며, 사악하고 잔인하기 그지없어 다른 사람들에게 통제되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주장은 "인디오는 율법과 자연법을 어기고 그들이 물들어 있는 죄악들, 특히 우상숭배와 불결한 인신공양 관습에 대한 교정책이자 처벌로써 원치 않더라도 에스빠냐의 지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 째 주장은 에스빠냐인들이 율법과 자연법에 따라 "해마다 우상에게 재물로 바쳐지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인디오들이) 저질러왔던 - 에스빠냐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들이 오늘도 계속해서 저지르는 - 악행과 그로 인한 참사를 방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주장은 "에스빠냐의 지배가 가톨릭 신부들이 통치자들과 이교도 사제들에 의해 서너차례 자행된 바 있는 피살의 위험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설교할 수 있게끔 함으로써 기독교 전파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유럽적 보편주의 : 권력의 레토릭 p22.
그리고 쎄뿔빼다의 이러한 주장들은 16세기 에스빠냐의 광범위한 아메리카 정복의 강력한 도덕적 동기부여가 되어줬다. 쎄뿔빼다의 주장은 도덕적 동기부여의 의미가 강했지만 실제로 에스빠냐와 같은 정치적/군사적 힘을 가진 나라들이 이러한 동기부여가 촉진시킨 식민지화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점은 즉각적인 물질적 이득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쎄뿔빼다의 주장을 반박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쩔수 없는 커다란 딜레마에 빠지게 했다. 애국심을 떠나서 신념과 즉각적 이익 양자에 반하는 주장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딜레마는 라스 까싸스가 착수한 과제 이기도 했다. 라스 까싸스는 쎄뿔빼다의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각각 "성급한 일반화, 최소 피해의 원칙, 자유의지"라는 개념들을 통해서 반박하였다. 모든 인디오들을 야만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소수의 과격한 야만적 행동을 전체 집단 혹은 정치적 구조의 문제로 일반화시킨 오류라는 것이다. 또한 식인 풍습, 인신공양과 같은 윤리적 문제들에 있어서 이러한 문제들은 막는데 힘써야 되기는 하지만 결코 과도한 부수적 피해를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즉 최소 피해의 원칙을 통해서 필수 불가결한 피해 이상의 피해는 결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식민지를 통해 물질적 이익을 취하려 했던 집단의 의도와는 상당히 상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종교적으로 선도하고 개종시켜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개종이 아니고서는 진심이 담기기 힘들것이라고 했다. 라스 까싸스의 주장은 쎄뿔빼다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하였고, 충분히 일리가 있는 근거들을 기초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토론은 결론을 맺지 못했으나 훗날 패권주의가 팽배해졌을 때 이를 바라보는 2가지의 상반된 관점을 형성하는 기초로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쎄뿔배다의 주장은 명분으로써 꽤나 오랬동안 이용될 수 있었다.
라스 까싸스의 주장이 충분히 쎄뿔빼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지화를 계속 추진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식민지화를 추진하던 강대국들은 쎄뿔빼다의 주장이 궂이 필요했던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명분을 떠나서 어찌되었든 간에 식민지를 만들고 침략을 해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식민지를 만들어 나갔던 실질적인 이유는 산업화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화학공업과 같은 새로운 공업의 원료, 새로운 상품 시장, 증가한 인구를 위한 식량, 국내의 잉여 자본의 유리한 투자 였다. 말하자면 경제적인 물질적 이득 이다. 이는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세계 1차 대전 즈음의 19세기에 행해지던 식민지 확보에서 이다. 정의를 추구하던 도덕적 명분따위는 이미 식민지가 되버린 나라의 국민들에게 있어서 깨부숴야 할 사상이었다. 정의란 것은 대단히 상대적이다.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오직 신만이 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대국들에 있어서 정의란 국가의 이익이 되는 행동이나 사상을 뜻하고 있었고 이것이 쎄뿔빼다가 고의적이진 않았더라도 그의 주장 이면에 숨기고 있던 또하나의 진실이었다. 그렇다면 왜 강대국들은 라스 까싸스 같은 자들의 반박을 무릅쓰고도 이러한 명분들을 내세운 것일까? 아무런 이유없이 지배하기에는 마음 한켠으로 죄책감이 들어서일까? 신에게 용서받지 못할 것 같아서 일까? 그것의 답 또한 각 국가의 또다른 이익에 관계된다. 당시 유럽의 국가들은 대부분이 카톨릭 교회를 신봉하고 있었고 종교적 도덕적 이미지들은 마치 오늘날 국가의 이미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교황의 칙령이나 신을 위한 명분등은 그 국가의 근본을 탄탄히 해주고 더불어 심리적으로도 안정시켜주는 최고의 힘이 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의 행동을 당연함 내지 합리적이라 볼 수 있게 하는 보편주의를 확보함으로써 식민지 국가들의 반발을 억제하는데 큰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몸싸움에서 이기고도 말싸움에서의 승리를 쟁취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유들이 없었더라도 강대국들의 식민지화는 이루어 졌을 게 뻔하지만, 그들은 종교적 도덕적 명분들을 만들게 되었다. 설령 그것이 반박 가능한 아주 속보이는 껍데기 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제국주의 ;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의 산업 자본주의 열강이 추진한 대외적인 팽창주의 정책을 의미. 그러나 20세기 후반 대대적인 탈식민지화 붐이 일어나게 됨으로써 더 이상 기독교 복음 전파나 식민지 열강의 문명화 사명과 같은 명분들도 빛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식민지화의 완벽한 종결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정확하게는 더 이상 식민지는 아니지만 본질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을때 '개입'의 종결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 명분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오늘날 이 '개입'의 명분은 바로 '인권과 민주주의'다. 이름만 들어서는 이전의 명분보다 더욱 정의롭고 정당화될 만하지만 이 또한 그 이면에는 국가간 복잡한 이해관계 뿐 아니라 자국의 이득 추구와 같은 물질적 추구가 숨어 있음엔 틀림 없다.
그런데 오늘날의 개입은 예전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간다. 바로 비정부기구들(NGOs)들의 출현이다. 비정부기구들은 한 나라의 정부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구가 만들어진 목적과 목표에 맞게 활동하기 때문에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개입할 때 감추고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심연의 의도들을 좀 덜 의심할 수 있다. 말그대로 인권단체는 진짜로 인권을 지키는 것에만 집중하는 단체라는 것이다. 만약 비정부기구에 의한 개입이라면 인권과 민주주의만을 추구하는 최소피해의 개입이 가능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날엔 이러한 비정부기구의 개입 말고도 또다른 개입이 생기곤 한다. 인도주의적 가치를 훼손했다는 점을 공격 명분으로 삼아 한 정부가 다른 정부에 대한 군사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라크와 걸프전을 벌인 미국이다. 미국이 이라크에 침략했을 당시 내세운 명분은 이라크내 존재한다고 판단되는 대량살상무기의 제거와 위험하고 사악한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는 조치였다.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비록 사담 후세인이 죽기는 하였지만 이를 계기로 이전에는 공공연히 국내에서 활동하지않던 여러 무장단체들이 이제는 대대적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고 또 그로인해 이라크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테러리스트 집단과 동일시 되는 인종 차별을 겪어야 했고 실제로 미국이 원했던 것이라 여겨지던 석유에 대한 권리의 보장성 또한 침해받게 되었다.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유럽적, 보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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