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최근 국제 정치계의 이목이 이집트로 집중되어 있다. 계속되는 시위와 압박 속에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이집트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 18일 만인 11일에 권력을 군부에 넘겨주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1981년부터 시작된 무바라크의 30년 독재 정치가 드디어 사형 선고를 받고 이집트에도 민주화의 태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아랍의 최빈국인 예멘, 레바논 그리고 오랜 내전으로 고통 받은 알제리에서도 혁명의 새싹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러한 아랍권의 새로운 변화의 발단은 튀니지에서 발생한 재스민(Jasmine) 혁명' 이였다. Free Tunisia(자유로운 튀니지) 글자를 만든 학생들 아랍권 민주화 바람의 근원은 한 튀니지 청년의 분신자살이었다. 튀니지 중부에 있는 인구 4만 명의 소도시 시디 부 지드(Sidi Bou Zid)에 사는 26살 모하메드 부아지지(Mohamed Bouazizi)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한 뒤 졸업하였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노점에서 과일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무허가 노점상 단속을 하던 경찰들에 의해 노점상이 철거당했다. 모하메드는 근처 경찰서에 가서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과 폭력뿐이었다. 그 후 시(市)청을 찾아가 수차례 항의 했지만 소용이 없자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자살했다. 이 소식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로 튀니지 전역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튀니지는 휴대전화 보급률이 상당히 높고 인구 1040만 명 중 350만 명이 정기적으로 인터넷 을 사용한다. 또 160만 명이 페이스북(Facebook)에 가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전파되는데 소셜네트워크(SNS)가 큰 역할을 했다. 이에 더하여 민주화 운동가들이 만든 '튀니리크스'(Tunileaks)는 대통령 일가의 과도한 재산 축적과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담은 외교 문서들을 공개하면서 국민들의 시위에 대한 의지를 북돋았다. 국민들은 시위를 통해 독재의 그늘에서 겪어야 했던 물가폭등, 높은 청년실업률,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의 부정부패와 같은 문제에 대한 대책 및 해결을 요구했다. 특히, 모하메드의 분신자살은 청년들의 저항의지에 불을 지폈고 이들은 혁명의 주 세력이 되어 청년실업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와 폭동은 시디 부지드에서 시작해 가세린(Kasserine) 등 튀니지 남부 지방까지 전파되었다. 청년층이 주축이 된 단체 시위가 튀니지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였고, 이를 진압하던 경찰들과의 충돌로 인해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당황한 튀니지 정부는 언론과 '튀니리크스'를 막으려 했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고 시위는 더욱 거세져갔다. 대응의 필요성을 느낀 벤 알리(Ben Ali) 튀니지 대통령은 국영 방송을 통해 평화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자며 실업률에 대한 대책으로 향후 2년간 3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23년간의 독재정치에 시달린 국민들은 시위를 멈출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자스민혁명, 자스민, 튀니지, 혁명 |
2018년 1월 14일 일요일
튀니지-자스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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