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5일 화요일

[한국사상의 이해] 남명 조식의 생애와 학문

[한국사상의 이해] 남명 조식의 생애와 학문  
목차

1.남명 조식의
생애와 시대
2. 조식의 학문적
배경과 경의 사상
3. 의의
실천적 학문
4. 남명 학파
정인홍, 최영경, 정 구
5. 강우학파와 강좌학파 비교와 특색

본문

청년기
20세에 생원, 진사에 1,2등으로 급제, 고문에 능하여 시관들을 놀라게 하였으나
중종 때의 기묘사화로 훈고 세력에 의해 사림들이 탄압을 받자 시국을 한탄하며
벼슬을 단념
입신 단념 계기: 성리대전에서 노재 허형(魯齋 許衡)의 출처(出處)에 관한 글을 읽음.


“이윤의 뜻을 뜻으로 하고 안연의 학을 학으로 하여, 벼슬에 나가면 유익한 일을 하고, 야에 처해서는 지조를 지킨다. 대장부라면 마땅히 이것 같아야 할 것이니 벼슬에 나아가서도 하는 일이 없고, 산림에 처해서 지킨 것이 없으면 뜻한 것, 배운 것을 무엇에 쓸꼬”
26세때 부친상으로 삼고초려를 하고, 가난과 싸우면서 민생들의 고초를 체험.
이것이 남명이 그의 사상 속에서 항상 민생을 잊지 않게 하였다.

단성소(丹城疎) 1555년(명종10)단성현감 조식이 올린 상소

“전하의 국사(國事)는 이미 글러먹었고 나라의 기반은 이미 무너졌으며, 하늘의 뜻은 이미 떠나고 백성들의 마음도 이미 멀어졌습니다…말단 관리들은 아래에서 시시덕거리며 주색이나 즐기고 고관들은 위에서 어물거리며 뇌물을 챙겨 늘리는 데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궁궐의 신하들은 당파를 심어 안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지방의 관리들은 백성들을 착취해 밖에서 이리처럼 날뛰니 살갗이 닳아버리면 터럭이 붙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자전(慈殿)은 생각이 깊지만 구중궁궐의 일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는 나이 어린 일개 고아일 뿐입니다. 천재(天災)가 수없이 일어나고 민심이 끝없이 갈라진 것을 무엇으로 감당하고 무엇으로 수습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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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레포트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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