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8일 수요일

화폐 트라우마 요약 및 시사점

화폐 트라우마 요약 및 시사점
화폐 트라우마 요약 및 시사점.hwp


목차
1. 기축통화 달러, 통화의 중심 그리고 위기
2. 달러 -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
3. 위안화에 대한 중국의 입장
4. 달러와 위안의 관계
5.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
6. 유로 - 단일화폐 통합의 노력
7. 유로 Advantage & Condition
8. 그리스 사태
9. 유로존의 미래
10.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
11. 금 새로운 돌파구
12.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
13. 결 론


본문
<기축통화 달러, 통화의 중심 그리고 위기>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 달러는 미군과 함께 유럽 땅으로 건너와 전쟁을 지원했다. 전쟁이 끝난 수 미군들이 곧장 고향으로 돌아간 것과 달리, 달러는 유럽에 그대로 남아 중요한 권력인자로서 위상을 유지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달러는 준비통화로서 그리 큰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미국은 외부에 돈을 빌려주기보다는 오히려 자본을 수입하는 국가였다. 그 당시, 기축통화는 영국 파운드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미국은 4년에 이르는 전쟁 기간 동안 모두 합쳐서 약 120억 달러의 자금을 유럽으로 송금했다. 오늘날로 환산한다면 약 1,750억 달러에 이르는 금액이다.
유럽이 미국에 진 채무는 결과적으로 1918년 종전 이후 유럽의 정치, 경제 등의 치명적인 악순환을 가져왔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연합국들은 엄청난 빚을 지게 된다. 결국,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 핵심 전범국으로 낙인이 찍힌 독일제국을 향해 높은 액수의 배상금을 강요했다. 또한,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높은 부채를 떠안고 있었던 유럽의 다른 승전국들 역시 전쟁에서 패배한 독일에서 흘러나오는 돈줄에 국고가 종속되었다.
미국, 프랑스, 독일은 결국 1924년에 이르러 Dawes Plan이라는 방책을 마련했다. 이 계획에 의거, 미국은 독일에 철도, 공업 등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해주었고, 독일은 그 돈으로 단계적으로 배상금을 지불할 수 있었다. 독일이 배상금을 지불 한 후, 연합국들은 이 배상금으로 미국 은행에 이자를 지급했다. 결국, 돈이 다시 뉴욕으로 흘러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미국이 자국에 가불을 해준 것 같은 형국이었다. 또한 이것은 20세기에 이루어진 최초의 대규모 '달러 리사이클링(Dollar Recycling)'이었을 것이다. 돈이 더 많은 이자를 찾아서 들어오자, Wall.st.는 달러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유럽으로 넘어간 세계금융 통화시스템이 파열되었다. 대공황이 찾아온 것이다. 미국의 트라우마는 '대공황'이다. 이는 1929년 10월 24일 미국 뉴욕 Wall. st.의 주가가 대폭락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대공황은 산업생산량을 50% 줄였고, 남성인구의 25%를 실업자로 전락시켰다. 미국인에게 디플레이션이란, 공포 그 자체이다. 그러나 이 디플레이션은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다는 점이 아이러니였다.
그리고 그 후, 1944년 7월,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일 때, 44개국 대표들이 전후의 새로운 금융질서를 입안하기 위하여 미국 뉴햄프셔주에 있는 휴양지 브레튼우즈에서 회합을 가졌다. 회의 장소가 미국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새로운 권력구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유럽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계는 한 세대 만에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세계로 변모했다. '미국의 세기'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공업 대국으로, 유럽에서 필요한 물자를 대부분 공급하던 '세계의 공장'이었다. 그에 걸맞은 경제력과 생산체계, 막대한 금 보유량을 가지고 있었고, 덕분에 엄청난 채무에 시달리던 서방 국가들로부터 견제를 받지 않고 달러가 기축통화가 될 수 있었다.
브레튼 우즈 협정의 내용은, 순금1온스=35달러 라는 고정 아래, 다른 나라의 통화는 달러에 대하여 고정 환율을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 통화제도를 관장하는 기구로 IMF와 IBRD(세계은행)을 출범시켰다. 이 브레튼 우즈 협정의 결과로, 비로소 달러는 기축통화가 되었다.
1944년 브레튼 우즈에서 결의된 사항은 일종의 전진을 의미했지만 완벽함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었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안정성은, 각국 통화의 평가환율이 달러에 대해 적정한 수준으로 책정되는 데 달려 있었다. 만약 평가환율이 지나치게 높거나 혹은 지나치게 낮게 책정된다면, 필연적으로 1920년대에 영국 파운드를 괴롭힌 것과 비슷한 정도로 위험한 긴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문제는, 화폐들 간의 상호가치가 변한다는 사실이다. 화폐의 가치는 국민경제의 강약에 따라 오르내리게 마련이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브레튼우즈 체제의 성공 여부는 국가들 간의 협력에 달려 있었다. 이제 달러가 공식적으로 국제적인 기축통화의 위상을 획득하게 됨에 따라 세계 여러 나라에 안정적이고 또 충분한 양의 화폐를 조달할 의무가 한 나라 정부, 즉 미국정부에게 주어졌다. 말하자면 미국의 연방 준비은행이 세계발권은행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새로운 금융질서가 세계경제에 안정을 선사해줄 것처럼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이 대규모로 상품을 생산하고 수출할 때, 유럽은 여전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재건사업, 그 중에서도 특히 사회기반시설을 재건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경제적인 영역에서 미국이 이 시기보다 더 큰 상대적 우위를 점한 적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미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 산업생산량 가운데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었다. 당시 미국은 다른 나라들을 큰 격차로 따돌리면서 수출을 대부분 책임지고 있었고, 전 세계 금보유고의 3분의2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달러는 1960년대까지는 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키워드
미국, 달러, 통화, 세계, 시사점, 기축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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