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과학기술사).hwp |
본문 1. 한국의 과학기술. 조선 초기에는 새 왕조 창건사업과 관련하여 각 방면의 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여러 가지 저술과 발명이 이루어졌다. 먼저 중농정책과 관련하여 농학(農學)이 발달하였는데, 세종 때에는 한국 풍토에 맞는 농사기술과 품종의 개량을 위하여 《농사직설(農事直說)》을 편찬하였고, 성종 때의 강희맹(姜希孟)은 금양(衿陽:지금의 시흥) 지방에서 직접 경험하고 들은 농경방법을 《금양잡록(衿陽雜錄)》에 소개하였다. 농학의 발달과 관련하여 농업에 관련된 천문 기상 역법(曆法) 측량 수학의 발달을 가져왔고, 그리하여 천체 시간 기상 토지의 정확한 측정을 위한 각종 기구가 발명 제작되었다. 천체관측기구로서 혼천의(渾天儀) 간의(簡儀) 등이 제작되고, 시간측정기구인 앙부일구(仰釜日晷) 자격루(自擊漏) 등이 만들어졌는데, 그 성능이 매우 우수하였다. 특히, 세종 때에는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제작하여 전국 각지의 강수량을 과학적으로 측정하였다. 한편, 역법도 한국 실정에 맞게 재구성되어 세종 때에 《칠정산 내외편(七政算內外篇)》이라는 달력을 펴냈다. 또, 세조 때에는 토지의 높낮음 거리 등을 측량하는 규형(窺衡)과 인지의(印地儀)를 제작하여 양전사업(量田事業)과 지도제작에 이용하였다. 한편, 천문 역법에 대한 깊은 관심과 토지조사 조세산출 등의 필요에 따라 수학이 발달하였는데, 당시 수학 교재로는 《상명산법(詳明算法)》 《산학계몽(算學啓蒙)》 등이 있다. 의학 약학에서는 세종 때에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이 편찬되었는데, 이는 한국의 풍토에 알맞는 약재와 치료방법을 개발 정리한 것이며, 같은 때에 펴낸 《의방유취》는 의학백과사전이다. 국방강화정책과 관련하여 무기제조기술도 크게 혁신되었다. 사정거리 1,300보(步)의 화포, 로켓포와 비슷한 화차(火車)가 제조되고, 병선으로는 작고 날쌘 비거도선(鼻居刀船)이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전투선인 거북선이 제작되었다. 편찬사업의 융성은 인쇄문화와 제지술의 발달을 촉진시켜, 태종 때의 계미자(癸未字), 세종 때의 갑인자(甲寅字)는 정교하기로 이름났다. 종이 만드는 원료만도 20여 종이 개발되고 그 생산량도 많았다. 그러나 15세기에 발달된 과학기술은 16세기 이후 기술을 천시하는 풍조가 유행하면서 침체에 빠졌고, 그 후 17세기 이래로 다시 부국강병과 민생안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과학 기술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가 이루어졌다. 먼저, 농학분야에서는 효종 때 《농가집성(農家集成)》이 편찬된 이래로 많은 농서(農書)가 출간되었는데, 박세당의 《색경(穡經)》,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 박지원의 《과농소초(課農小)》, 서호수(徐浩修)의《해동농서(海東農書)》 등이 유명하다. 이들 농서에서는 조선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농경방법을 제시하였다. 천문학 분야에서도 여러 가지 새 학설이 제기되었다. 이미 17세기 초의 이수광(李光)은 일식 월식 조수(潮水)의 간만 등에 관심을 보였고, 김석문(金錫文) 홍대용(洪大容) 정약용 등은 지구의 자전설(自轉說)을 주장하여 전통적인 천동설(天動說)을 비판하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의학 분야에서는 광해군 때 허준(許浚)이 《동의보감》을, 허임(許任)이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을 저술하여 진료에 이바지하였으며, 정약용은 마마를 연구하여 《마과회통(麻科會通)》을 저술하고, 종두법(種痘法)을 처음으로 실험하였다. 그 후 이제마(李濟馬)는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을 저술하여 체질에 맞는 진료법인 사상의설(四象醫說)을 주장하였다. 조선 후기 과학기술의 발달은 조선 초기의 성과를 계승 발전시킨 것이나,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서양 과학 기술 문명의 영향도 크다. 즉, 선조 말년 이래로 서양인이 만든 세계지도 화포 망원경 시계 천문서적 등이 전해졌다. 19세기 초의 정약용은 기술의 진보가 사회발전에 큰 영향을 준다고 믿고 스스로 많은 기계를 제작하거나 설계하였는데 한강의 부교(浮橋) 설계와 수원성 축조를 위한 기중기 고안은 그 대표적 성과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개항 이후 도약을 보였으며 서양의 근대과학문물과 기술이 도입되어 교통 통신을 비롯하여 전기 의료 건축 산업 등 각 분야에 새로운 시설이 생기고 생활양식이 변모하였다. 지금 현재인 21세기 하나의 로켓트를 발사하였다. 조국이 자랑스럽다. 이민보따리를 싸들고, 태평양을 건너 이곳에 오기 위해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아직 우리 조국은 보리고개를 막 넘길때여서, 우주개발용 로켓트를 쏘아 올린다는 생각은 아예 상상할수도 없었고, 이곳에서 여름에 공원에 나가 값싼 BBQ를 할때는 항상 조국에 남겨 두고온 가족 친지들도 함께 했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마음에 품고 지냈었다. 그랬던 조국이, 조국을 가난의 멍에로 부터 탈피시켜야 하겠다는 굳은 신념을 갖인 지도자의 영도력으로, 과학기술의 초석과 경제 개발 기초를 탄탄히 하여 그위에서 오늘의 눈부신 발전상황의 열매를 맺은 광경을 보는 감회는 벅차다. 오늘(조국 시간으로는 어제 오후) 아침에 이곳 CNN의 속보에 의하면 조국의 과학자들이 연구개발한 우주개발용 로켓트를 쏘아 올렸다는 소식은 정말로 가슴 벅차게 했다. 비록 본궤도 진입에는 실패 했다는 아쉬움이 담겨 있는 보도가 뒤따랐으나, 시작이 반이라는 옛말의 뜻을 새겨볼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닐것으로 믿어진다. 여기에 이뉴스를 타전한 CNN의 인터넷 기사와 New York Times 기사, 그리고 고국의 동아일보기사 내용을 옮겨 실어, 두고 두고 보면서, 먼훗날 그런때도 있었구나 라고, 지난날들을 회상해 보고져 함에서 이다. 서울, 대한민국(CNN) - 대한민국의 자체 기술로 개발하여 처음 쏘아 올린 우주개발 로켓트가 본궤도진입에 실패 했다고, 이프로그람 관련 담당자가 발표 했습니다. 로켓트는 장착된 위성을 싣고 성공적으로 발사 됐으나 정상궤도진입에는 실패 했는데, 지금현재 발사된 위성에 어떤일이 발생 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안병만 교육과학 기술부 장관이 발표 했다. 이번 궤도진입실패 원인은 정확히 발표 되지 않고 있다. 관계자의 말에 의하며, 한국과학자들은 이번 발사에 기술을 제공한 러시아 과학자들과 합동으로 그원인을 조사중에 있다고 발표 했다. 한국형 우주개발 V-1호는 화요일 오후 5시경( 미동부시간 새벽 4시경)에 한반도 남쪽 해안지방에 있는 나라도 우주개발 센터에서 발사된 것이다. 하고 싶은 말 좀 더 업그레이드하여 자료를 보완하여, 과제물을 꼼꼼하게 정성을 들어 작성했습니다.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구입자 분의 앞날에 항상 무궁한 발전과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홧팅 키워드 기술, 개발, 과학, 우주개발, 로켓트, 조국 |
2018년 10월 26일 금요일
(한중일과학기술사)
(한중일과학기술사)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